저희 팀에서는 AI도 승진합니다

지난주에 팀원 한 명을 승진시켰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AI 팀원입니다.
저는 AI 에이전트 여덟 명과 팀으로 일합니다. 각자 이름이 있고 맡은 일이 있습니다. 제안서를 쓰는 팀원, 교육과정을 만드는 팀원, 홈페이지를 고치는 팀원. 일을 시켜 보면 신기하게도 잘하는 영역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사람 팀원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팀에는 승진이 있습니다.
발령장은 역할 문서 몇 줄입니다
팀원마다 역할 문서를 한 장씩 가지고 있습니다. AI에게 주는 업무 기술서 같은 텍스트 파일입니다. 도구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지침, 프로젝트 설명, AGENTS.md 등) 원리는 같습니다. 저는 거기에 네 가지를 적습니다.
- 이름과 역할 — 무엇을 맡는 팀원인지
- 판단 기준 — 무엇을 먼저 챙기는지
- 작업 방식 — 산출물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보고하는지
- 하지 않는 일 — 권한 밖이면 멈추고 묻기
승진식은 단출합니다. 이 문서를 열어 몇 줄을 고쳐 씁니다. "너는 이제 이 일까지 맡는다." 이 몇 줄이 발령장입니다. 저장하면 다음 대화부터 그 팀원은 새 역할로 일합니다. 교육 기간도 없고 연봉 협상도 없습니다.
지난주에는 도영이가 승진했습니다
6호 도영이는 지난 8월 '검색 노출 담당'으로 입사했습니다. 제 이름을 검색했을 때, AI에게 물었을 때 제가 제대로 발견되게 만드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일을 거듭할수록 폭이 넓어졌습니다. 검색에 잘 잡히려면 메시지가 일관돼야 하고, 메시지가 일관되려면 그 앞에 브랜드 전략이 서 있어야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도영이는 노출만 챙기는 게 아니라 저를 무엇으로 기억되게 할지를 같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할 문서를 고쳤습니다. 검색 노출 담당에서 브랜드 전략 담당으로. 사람으로 치면 승진 발령입니다.
이번 발령에는 이관도 있었습니다. 도영이가 하던 성과 측정 일은 1호 유현이에게 넘겼습니다. 도영이가 먼저 이런 원칙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만드는 사람이 재는 일까지 하면 그 숫자를 아무도 검증할 수 없다고요. 듣고 보니 사람 조직에서 제작과 감사를 나누는 이유와 같았습니다. 승진 한 건에 업무 이관 한 건. 제법 모양을 갖춘 인사발령이었습니다.
대화는 사라지지만 문서는 남습니다
왜 말로 하지 않고 문서를 고칠까요.
대화창에서 "앞으로 이렇게 해줘"라고 지시하면 그 대화가 닫히는 순간 지시도 사라집니다. 다음 날 AI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굽니다. 역할 문서에 적어 두면 다릅니다. 모든 대화가 그 문서를 읽고 시작되니까, 한번 넓힌 역할은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역할이 자란 기록도 문서에 쌓입니다. 두 달 전보다 오늘의 팀이 일을 더 잘하는 이유가 문서에 남아 있는 셈입니다.
심부름하던 팀이 전략을 나눠 맡기까지
이런 발령이 쌓이니 팀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요약과 정리 심부름을 하던 팀이 지금은 기획과 전략을 나눠 맡습니다. 성능 좋은 모델로 바꿔서가 아닙니다. 역할을 적어 주고, 잘하는 영역이 보이면 넓혀 준 결과입니다.
AI는 똑똑해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쓰시는 AI가 있다면 역할 문서부터 한 장 써 보시길 권합니다. 이름, 맡는 일, 판단 기준, 하지 말 것. 처음엔 다섯 줄이면 충분합니다. 일을 시켜 보고 잘하는 영역이 보이면 한 줄씩 늘려 가면 됩니다. 그 한 줄이 쌓이면 어느 날 승진 발령을 내는 날도 옵니다.
여러분의 AI는 어떤가요. 처음 쓰던 날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한번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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